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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 마틴 치버스 별세

Wed 07 January 2026, 17:00|Tottenham Hotspur

토트넘 홋스퍼는 공격수 마틴 치버스가 지난 7일(현지 시각) 향년 80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깊은 슬픔을 느낀다.

클럽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자 토트넘 가족의 큰 사랑을 받았던 마틴은 1968년부터 1976년까지 8년간 활약하며 세 차례의 주요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사우스햄튼에서 1945년 4월 27일 태어난 마틴 하코트 치버스는 1962년 9월 사우스햄튼과 프로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해 9월 8일 찰턴 애슬레틱을 상대로 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사우스햄튼 소속으로 190경기에 출전해 107골을 기록했다. 특히 1965/66 시즌에는 30골로 2부 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팀의 승격을 이끌었다.

1968년 1월, 당시 클럽 역대 최고 이적료인 12만 5천 파운드에 토트넘에 합류했다. 1월 17일 셰필드 웬즈데이와의 데뷔전에서 30야드(약 27.4미터) 거리의 발리슛으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어 10일 뒤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FA컵 3라운드에서는 멀티골을 기록했다. 이는 토트넘 소속으로 기록한 통산 174골의 시작이었으며,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클럽 역대 최다 득점 4위에 해당한다.

1968년 9월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약 1년간 공백기를 가졌으나, 복귀 이후 토트넘 공격진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1971년 아스톤 빌라와의 리그컵 결승전에서는 두 골을 모두 책임지며 우승을 견인했고, 같은 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도 데뷔했다. 이후 4년간 잉글랜드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전성기 시절 마틴은 폭발적인 속도와 뛰어난 제공권, 탁월한 균형 감각과 세밀한 볼 컨트롤을 겸비한 공격수였다. 수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냈으며, 특히 1972년 울버햄튼과의 UEFA컵 결승 1차전에서 기록한 두 골은 클럽 역사상 첫 유럽 대항전 우승을 향한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다.

마틴은 1971/72 시즌 62경기에 출전해 42골을 기록했고, 다음 시즌에는 노리치 시티를 꺾고 다시 한번 리그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또한 1974년 페예노르트와의 UEFA컵 결승전에도 출전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로는 24경기 13골을 기록했으며, 1973년 10월 폴란드전을 끝으로 대표팀 경력을 마쳤다.

1976년 여름 스위스의 세르베트로 이적하며 토트넘에서의 생활을 마쳤다. 마틴은 토트넘 소속으로 총 367경기에 출전했다. 리그 통산 118골은 클럽 역대 득점 7위의 기록이다. 유럽 대항전에서는 22골을 터뜨렸는데, 이는 2013년까지 클럽 최다 기록이었으며 현재는 역대 4위에 자리하고 이싸. 특히 리그컵에서 기록한 23골은 여전히 클럽 역대 최다 기록이다.

마틴은 세르베트에서 2년간 38골을 넣으며 1978년 스위스컵 우승을 경험했다. 이후 노리치 시티,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을 거쳐 프로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도체스터 타운의 선수 겸 감독, 노르웨이 바르드의 코치, 바넷에서의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은퇴 후에도 토트넘과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자선 경기를 조직하고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매치데이 호스트로 활동했다. 1988년 클럽 최초의 ‘호스피탈리티 레전드’로 선정되었다. 최근까지도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호스트로 활동하며 특유의 따뜻하고 다정한 성품으로 직원과 팬들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마틴은 아내 줄리아와 자녀들인 닉, 루크, 안드레아, 멜라니, 그리고 사랑하는 손주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토트넘 홋스퍼는 이 슬픈 시기에 마틴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옛 동료들에게 진심 어린 애도를 전한다.